타지마할, 1880년


타지마할, 1880년


타지마할, 1880년


타지마할 내부 장식, 1880년


봄베이(현재의 뭄바이), 1880년


봄베이, 1880년


봄베이, 1880년


봄베이 항, 1880년


바라나(현재의 바라나시), 1880년


바라나, 1880년


바라나, 1880년


바라나, 1880년


물 주머니를 짊어진 남자들, 1885년


다르질링-히말라야 철도, 1880년


다르질링-히말라야 철도, 1880년


다르질링-히말라야 철도, 1880년


디와니카스(Diwan-i-Khas), 1890년


꾸뜹미나르(Qutub Minar), 1890년


꾸뜹미나르(Qutub Minar), 1890년


인도 가정의 모습, 1880년


빌(Bheel)족 여성들, 1880년


러크나우(Lucknow), 1880년


러크나우(Lucknow), 1880년


러크나우의 딜쿠샤 코티(Dilkusha Kothi) 저택, 1880년


러크나우의 라마르티니에르(LA MARTINIERE), 1880년


라호르(현재는 파키스탄에 속함), 1880년


라호르(Lahore), 1880년


마두라이 스리미낙시 사원, 1880년


수레에 탄 남자들, 1880년


봄베이 인근 해변, 1880년


마운트 아부(Mount Abu)인근의 낙키 레이크(Nakki Lake), 1880년


엘레판타(인도명은 가라푸리)섬의 힌두교 사원, 1880년


엘레판타(인도명은 가라푸리)섬의 힌두교 사원, 1880년


무희, 1880년


티루치라팔리(Tiruchirapalli), 1890년


티루치라팔리(Tiruchirapalli), 1890년


고행자, 1880년


파테푸르 시크리(Fatehpur Sikri), 1880년


파테푸르 시크리 승리의 문(Buland Darwaza), 1880년


파테푸르 시크리의 판치마할(Panchmahal), 1880년


파테푸르 시크리의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 1880년


1896년 11월 23일 새벽, 빅토리아 역 신문 가판대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세계최초로 유명한 런던 지하철은 1863년 1월 9일 개통하였다.



1865년, 파리 거리의 1인용 소변기


1874년, 화장실 건물


1875년, 2인용 소변기


1875년, 2인용 소변기


1875년, 생 제르맹 록세루아 교회 앞 2인용 소변기


1875년, 빅토리아 거리의 2인용 소변기


1875년, 마들렌 시장의 공중화장실


1875년, 공중화장실


1875년, 파리 생 쉴피스 성당 앞 공중화장실


1875년, 1인용 소변기


1875년, 1인용 소변기


1875년, 바티뇰 광장의 1인용 소변기


1875년, 샹젤리제 거리의 소변기


1875년, 3인용 소변기


1875년, 3인용 소변기


1875년, Boulevard Ornano의 3인용 소변기


1875년, 파리 극장가 소변기


1875년, 코미디 극장 근처 6인용 소변기


1875년, 성당 앞 6인용 소변기


1875년, 바티뇰 대로(Boulevard des Batignolles)의 6인용 소변기


1875년, 파리 시장의 6인용 소변기


1875년, 환전소 앞의 6인용 소변기



자오저우(膠州): 중국 산둥성 칭다오 북서부, 다구허 하류에 위치한다. 원(元)나라 때 자오저우라고 불렀다가 1913년에 자오현으로 개칭하였고, 1987년에 지금의 자오저우시가 되었다.

 

19세기 제국주의 확대의 시대, 통일 독일제국에서도 다른 나라들과 같이 식민지 획득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독일은 청 · 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획득한 랴오둥(遼東) 반도를 프랑스 · 러시아와 합세하여 일본으로 하여금 포기하도록 하였으며, 1897년 칭다오(靑島)에서 발생한 선교사 살해 사건을 빌미로 칭다오를 점령하였다. 1897년 11월 14일, 독일 해병대는 장기 항해로 인한 상륙과 육상훈련을 구실로 자오저우만에 상륙하여, 전투없이 자오저우의 총병아문에 있던 청나라 병사들 1,000명 이상에게 퇴거를 명하고 만의 해안을 점령했다. 

몇 개월 후인 3월 6일, 독일 제국은 독청조약을 맺어, 자오저우만을 99년간 청나라 정부로부터 조차하게 되었다.

































1871년 3월 18일부터 5월 28일까지 72일간 파리에서 민중 및 노동자들에 의해 수립된 정권.

프로이센 군대가 파리를 점령하는 패전의 혼란 속에서 파리의 사회주의자와 노동자들은 '파리 코뮌'으로 알려진 폭동을 일으켜 한때 시정부를 장악하고 군대까지 조직했다.














제노바(영어로는 제노아'Genoa'라고 한다)는 이탈리아 쪽의 리구리아해(海) 중앙에 위치하는 이탈리아 제1의 항구 도시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음악가 N.파가니니의 출생지로 유명하다. 제노바는 예로부터 이탈리아 북부의 중요한 항구 도시들 중의 하나였다. 

 

기원전 200년에 로마인들이 정착하였으며 1800년에는 나폴레옹 1세에 의하여 프랑스에 합방되었고, 1815년에는 사르데냐 왕국이 차지하였고, 1861년에는 이탈리아 왕국의 부분으로 병합되어 오늘에 이른다.

 

유럽 연합은 제노바를 프랑스의 릴과 함께 2004년 유럽 문화 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로 선정하였다.




















1881년, 아코(Acre)


베두인족 노인


물통을 든 베두인족 여인


협곡


1881년, 올리브산 전망


1882년, 베들레햄 예수탄생성당


1881년, 베들레헴 전경


1881년, 베들레헴 전경


베들레헴 소녀의 전통의상


예리코(Jericho, 여리고)


1882년, 예리코(Jericho, 여리고)


예루살렘 거리


1881년, 예루살렘 다윗의 탑


1882년, 예루살렘 성묘성당 입구


1882년, 예루살렘 바위의 돔


1882년, 성묘(예수가 부활할 때까지 누워 있었던 자리)


1882년, 예수수난 성당(The Basilica of the Agony)


1882년, 예루살렘 빌라도의 관정


예루살렘 겟세마네 동산


모여있는 나병 환자들, 예루살렘


예루살렘 자파게이트(Jaffa Gate)외부


1882년, 예루살렘 바위의 돔 안뜰


1881년, 예루살렘 전경


예루살렘 전경


예루살렘 거리 노점상들


예루살렘 사도의 샘


1881년, 예루살렘 성묘성당


1881년, 요단강


1881년, 마르사바(Mar Saba)


1881년, 올리브 산


1882년, 올리브 산


사해


사해


1882년, 사해


낙타상인들


요단강변의 사람들


1881년, 사마리아 세바스티아


실로암(Siloam)


티베리아스(Tiberias)


텔아비브야파(Tel Aviv-Yafo, Jaffa)


1882년, 텔아비브야파(Tel Aviv-Yafo, Jaffa)



위의 사진은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서 풀먼(Pullman) 객차회사가 전시한 신형 슈페리어 열차의 모습이다.

19세기 후반, 풀먼 열차는 호화롭기로 유명한 기차였다. 흥미롭게도 1883년에 이 열차를 탄 '조선인'들이 존재했다. 

바로 1883년 조미통상조약체결후 미국을 방문한 보빙사(報聘事)라는 사절단이었다.


이 사절단의 일원이었던 28세의 유길준은 <서유견문>을 남겼는데, 바로 이때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 워싱턴을 향해가는 풀먼 열차를 탄 경험을 기술하고 있다.


"기차는 증기기관의 힘을 빌려서 움직이는 차인데, 화륜차라고도 한다. 앞차 한 량에다 증기 기계를 장치하여 기관차라 이름하고, 기관차 한 량으로 다른 차 20, 30량 내지 40, 50량을 끈다. 기차가 달리기 위하여 길을 닦은 뒤에, 두 줄의 철선을 깔아 그 이름을 철로라고 한다. 철로를 가설하는 재료는 철선과 침목이다."


"멀리 가는 차는 밤낮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차 안에다 침구를 갖춰 놓았는데, 낮에는 걷어서 차벽에 걸어두고, 밤에는 내려서 평상처럼 된 상하 2층의 침대를 만든다. 또 음식차가 있어서 하루 세 끼를 제공하고, 세면실과 변소의 위치도 조리 있게 배치되어서 아주 편리하다."


보빙사(報聘事).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유길준


풀먼 객차회사는 1867년에 창업하여 1920년대 중반에는 자동차산업까지 아우르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불황이 겹치고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며 분해되다가 1968년을 끝으로 모든 사업체와 자산을 청산했다.


아래의 사진은 약소국이었던 조선의 사절단들이 타고 눈이 휘둥그레졌던 풀먼 슈페리어 열차의 일등석 객실 내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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