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Frederick James Halse)


1910년, 뉴질랜드 웰링턴 웨이드스톤(Wadestown)의 '데이비드 테일러 정육점(David Taylor's butcher shop)'의 모습이다.

장사가 잘되는 모양인지 직원이 3명이나 되고 배달용 마차와 말도 3마리나 있다.

고기가 주렁주렁 걸린 정육점 입구에 서있는 수염난 남자가 사장인 데이비드 테일러이다.






1911 Fiat S61


프랑스 그랑프리(Grand Prix de France)는 1911년 7월 23일, 프랑스 자동차 경주단체인 ACO(Automobile Club de l'Ouest)가 열었던 대회이다.  ACF (Automobile Club of France)가 주최하는 프랑스 그랑프리(French Grand Prix)와는 별도의 대회로 공식적인 프랑스 그랑프리의 공식계보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의 피아트(FIAT)社는 10.5리터 4기통 엔진을 장착한 S61 모델(사진 위)을 내세워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S61은 1911년 처음으로 열린 인디애나폴리스 500 경주에서도 3위를 차지하였으며, 1912년 인디애나폴리스 500 경주에서는 2위를 차지하는등 10년간 여러대회에 입상하였다.


아래의 사진들은 대회 당시의 모습들로 현재에도 건재한 자동차메이커가 있는가 하면, 이름조차 생소한 자동차 회사들도 있다.


스코어보드


Alkjone 자동차


Rolland-Pilen 자동차


Deveraux 자동차


Cotton-Degutt 자동차


Lorraine-Dietrich 자동차


Olier 자동차


Rolland-Pilen 자동차


Rolland-Pilen 자동차


전복사고


부가티 자동차


부가티 자동차


PROTOS 자동차


PROTOS 자동차


우승자 Victor Hémery가 피아트 S61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는 모습


결승선에 들어오는 피아트 S61


우승 후 인터뷰중인 Victor Hémery


Victor Hémery 더러워진 얼굴을 씻고 있다



프리츠 하버(Fritz Haber)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인 1915년 4월 22일 오후 5시, 서부전선에서 독일이 벨기에 이프르에서 프랑스 군을 대상으로 독가스 공격을 실시했다. 독일군 진영 쪽에서 날아오는 황색의 연기를 기이하게 바라보던 프랑스 병사들은 이내 고통에 사로잡혔다. 이 연기의 정체는 바로 세계최초의 화학전의 서막을 연 '염소가스'

전의를 상실한 프랑스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질식사 하거나 참호에서 달아나다가 쓰러져 죽어갔다. 이날 무려 5천여 명의 프랑스 군인이 사망하고 6천 명이 포로로 사로잡혔다.


이 가스의 발명자는 ‘화학무기의 아버지’ 프리츠 하버였다. 화학자였던 그의 아내 클라라 하버는 독가스 개발에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 권총 자살을 택했지만 프리츠 하버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오히려 그에게 질소비료 생산을 위한 암모니아 합성법 개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선사했다.


프리츠 하버의 뿌리는 유태인이었지만 조국이었던 독일에 수많은 독가스 개발로 충성을 바쳤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버가 최후로 발명한 '시클론-B' 독가스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그의 동족들을 살상하는데 사용되었다.


1915년, 참호속에서 방독면을 쓴 보병들


1915년 8월, 프랑스 군인들이 방독면 사용법을 교육받고 있다.


참호속에서 방독면 테스트를 해보는 군인


신형 방독면과 보호의를 착용한 군인


또다른 방독면


방독면을 지급받은 병사들


1915년 12월 31일, 프랑스 마른(Marne)에서 군인들이 화생방 착용훈련을 점검받고 있다.


1916년 1월, 프랑스 마른(Marne)에서 어린이들이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다


파리 근교 포트 방센느(Porte de Vincennes)의 방독면 공장


교회의 종을 화학공격 경고용으로 사용하는 모습


1916년 9월, 이제르의 군수공장에서 독가스를 생산하고 있다


1917년 5월, 프랑스 센생더니 군수공장에서 독가스가 장착된 120미리 포탄이 생산되고 있다


1917년 7월, 프랑스 보클뤼즈 군수공장


1917년 8월25일, 프랑스 뫼즈에서 한 병사가 가스공격 신호용 사이렌을 들고 있다


1917년 8월, 프랑스 뫼르트에모젤에서 가스탄을 발포하는 모습


1917년 8월, 프랑스 엔에서 방독면을 착용한 병사들이 기관총을 쏘고 있다


1918년 3월, 뫼르트에모젤에서 소년이 방독면을 휴대하라는 안내문을 읽고 있다


1918년 3월, 방독면을 점검하는 미군병사들


1918년 4월, 프랑스 벨포르에서 항겨자가스 생성 실험중인 모습


1918년 4월, 군견에게 방독면을 씌워주고 있다


1918년 4월, 프랑스 보주(Vosges)에서 방독면을 쓴 제독반이 참호를 소독중인 모습


1918년, 방독면을 착용한 독일 간호사


1918년 5월, 프랑스 보주(Vosges)에서 겨자가스에 오염된 포를 제독하는 모습


1918년 7월, 프랑스 솜(Somme)에서 방독면을 쓰고 죽어간 독일군 사망자


프랑스 셍 쏘플리유(Saint-Sauflieu)의 경고표시


1918년 9월, 센에마른(Seine-et-Marne)에서 촬영된 통신용 비둘기 독가스 보호장구


1918년 10월, 라 샤펠(La-Chapelle)에서 화학전 대비 훈련중인 모습


시대를 막론하고 전쟁터에서 종횡무진하는 종군기자들은 목숨을 건 취재활동을 하지만 1910년대의 종군기자들은 훨씬 더 힘들었을 듯 하다. 

요즘이야 카메라의 무게가 많이 가벼워졌지만 당시만 해도 무거운 카메라와 허리까지 오는 삼각대를 항시 휴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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