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Charles W. Cushman)


아래의 모습은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FBI의 기록 조사 시스템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40년대 초, FBI는 이곳 D.C. Armory에 2,300만 개의 인물카드와 1000만 명의 지문을 보관했다. 전시 중 연방정부는 배신자와 스파이를 감시조사 하기 위해 FBI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몹시 우려했으며, 이에 FBI 인원 규모는 13,000명에 달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국민당, 소련은 중국 공산당과 연대를 맺는다. 이들은 서로 회담을 개최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듯하였으나 중공군에 비해 4배나 전력이 앞서는 장제스의 국민당은 협정을 파기하고 내전에 돌입한다.

초기에는 국민당이 앞섰으나 중국인들의 민심을 얻지 못하며 점차 역전되어갔다. 1949년 1월에는 톈진과 베이징이 함락되었으며 4월에는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이 넘어갔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국민당은 타이완으로 쫓겨갔다.


아래 사진은 1949년 5월, 국민당이 점령 중인 상하이를 공격하기 위해 외곽에 진주 중인 중공군의 모습이다.









1940년, 세계 제1차 대전 시기의 여성들은 각선미를 뽐낼 필수 아이템인 스타킹의 부족에 시달렸다. 스타킹의 원료인 실크와 나일론이 군수품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여성들은 다리를 스타킹 색으로 칠하거나 스타킹의 올을 정교하게 표현해낸 이른바 '액체 스타킹(liquid stockings)'을 개발(?) 해 신고 다녔다.



















전시에는 남자만 고생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후방의 여성들도 식료품 공장, 군수품 공장은 물론이고 각종 허드렛일에 동원되기 마련이다. 현대전이 국가총력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사진은 2차대전 중 영국 잉글랜드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는 여성 직원의 모습. 



1949년에서 1951년까지 일본에 주둔한 미 해군에 의해 촬영된 사진은 당시의 일본의 일상 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가사키 현 사세보의 전통공연


가부키 극장 단원들


일본 여성


기모노를 갖춘 일본소녀


교토의 어린이들


백화점


과일노점상


후지산


도쿄, 긴자


일식 식당


도쿄, 히비야공원


일본 가족


참배하러가는 일본인들


여학생들


수산시장


지하철역


학예회


교토


야채가게


나가사키의 부서진 건물


니치게키 극장


일본의 야경


사세보 해변


사세보 거리의 노점상


벼농사 풍경


사세보 거리의 군중


사세보 어촌 풍경


사세보 부두


여중생


기념품 가게


도쿄


도쿄 전차


































































(사진: Sam S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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