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트 헨리 울슨(Albert Henry Woolson)은 1847년생으로 미국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최후의 군인이었다.

뉴욕주 엔트워프에서 태어난 알버트 울슨은 1847년 2월 11일 출생을 주장했지만, 1850년 미국 인구조사표에 그의 출생이 기록되어 있고 이후 조사에 따라 공식적으로는 1850년생으로 확인되었다.


그의 아버지 윌러드 울슨은 남북전쟁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 전사하였고, 알버트 울슨은 1864년 10월 10일 미네소타 포병연대에 드러머로 자원입대하였다(전투상황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고 울슨은 9월 7일에 제대를 하였다.

이후 고향 미네소타에서 목수로 일하다 남북전쟁 참전용사들의 모임인 미국 육해 군인회(Grand Army of the Republic)의 일원이 되었으며 이후 1953년에는 수석사령관이 되었다.


1956년 8월 2일, 노환으로 인해 미네소타의 성누가병원에서 10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실제로는 만 106세)

그의 장례식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국인들은 북부군(Union Army)과의 마지막 연결고리를 잃었습니다. 그의 사망은 남북전쟁 참전용사들의 용맹함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큰  슬픔을 줍니다" 라며 추모사를 낭독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일본군이 물러가자 베트남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다.

하지만 원주인(?)이었던 프랑스는 베트남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베트남 침공을 시작하여 양국간의 전쟁이 일어났다.(제 1차 인도차이나전쟁)


개전 초기에는 프랑스군의 기세가 높았으나 게릴라전으로 항전한 베트남군에게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1954년 5월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궤멸되었고, 7월 제네바에서 휴전 협정을 맺고 전격 철수를 결정한다.


이 포스팅의 사진은 1954년 7월, 베트남 북부의 하이퐁(Haiphong)에서 베트남 가톨릭 신자들이 철수하는 프랑스해군의 배에 올라타 피난길에 오르는 모습이다.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1929년 11월 12일 ~ 1982년 9월 14일)는 미국의 영화 배우이자 모나코의 대공 레니에 3세의 공비(公妃:Princess, HSH the Princess of monacco)로 유명하다.

1953년 10월, 모감보로 영화계에 데뷔한 그녀는 1954년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갈채'를 비롯해 5개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 골든 글로브상을 탔다.  이후 1954년 잡지 화보를 찍는다는 이유로 모나코를 방문했다가 레니에 3세를 만나게 된다.

레니에 3세는 그레이스 켈리에게 청혼 선물로 1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게 되고, 그레이스 켈리는 영화 배우 출신답게 극적인 연출을 하게 된다. 바로 그녀의 작품 ‘상류사회’에 이 반지를 끼고 출연했던 것인데 결국 1956년 4월 둘은 결혼을 하였다.

 

1982년 9월 14일, 그녀는 자동차를 운전하던 도중 갑작스런 발작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망했지만 차에 같이 타고 있던 그녀의 딸 스테파니 공주는 살아남았다. 1999년 6월, 미국 영화 연구소가 선정한 미국영화의 전설적인 50명의 배우중 한명으로 선정되었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항공사 스튜어디어스는 여성들에게 선망의 직업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도 스튜어디어스는 인기직종이지만 50년대 당시에는 이제 막 떠오르는 직업군이었다. 다른 직업들에 비해 특별히 보수가 많지도 않았고 불규칙한 생활과 승진의 가능성이 현저히 적었다. 하지만 억눌려있던 여성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과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당시 스튜어디어스에 대한 자격요건은 21~26세, 고졸, 미혼, 임기응변, 차분한 목소리등이었다.










































영국 그룹 퀸의 리드보컬인 프레디 머큐리는 1946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에서 태어났다. 인도국적을 가진 아버지는 그를 고국인 인도에서 공부시켰으며, 1963년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그의 집안은 8세기에 이슬람교 교도에 쫓겨 인도로 피신한 페르시아-조로아스터교 교도의 후손이어서 사망당시 조로아스터교 묘지에 묻힌 것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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