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0월 16일, 치과의사 윌리엄 TG 모튼(William T. G. Morton)은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에테르를 사용한 전신 마취의 수술을 대중 앞에서 시연했다.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 : 은판 사진)으로 촬영된 사진 속에는 외과의사 헨리 제이콥 비겔로(Henry Jacob Bigelow), 존 콜린스 워렌(John Collins Warren: 사진 속에서 환자의 허벅지를 짚고 있는 사람) 등이 보이고 있다. 

다만 현재 수술 장면으로 남은 사진은 며칠 후 기록을 위해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수술 장면의 그림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외과 과장이었던 존 콜린스 워렌은 마취된 환자 에드워드 길버트 에보트(Edward Gilbert Abbot)의 목에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담당했다. 



수술실로 사용된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원형극장은 현재까지도 기념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10월 16일은 '세계 마취의 날(World Anesthesia Day)'로 지정되었다.


피츠버그 노스사이드 스틸 웍스(Pittsburgh Northside Steel Works)의 1950년대 용광로의 모습이다. 

1980년대에 철거하였으며 NFL 피츠버그 스틸러스 팀 명칭의 유래가 되었다.







1952년 9월 28일, 스코틀랜드에 있는 영국 왕실의 별궁 '밸모랄 성'에서 창문을 통해 아이들(여자아이는 앤 공주, 남자아이는 찰스 왕세자)을 끌어올리는 엘리자베스 2세의 27살 시절의 모습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53년 6월 2일 조지 6세에 이어 왕위에 올랐다.






















(사진: Charles W. Cushman)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 군이 파괴한 쿠웨이트의 유정을 캐나다 소방관들이 밀봉하는 모습이다. 

그해 1월 이라크군이 철수하면서 쿠웨이트의 유정 800여 개에 폭발물을 설치해 파괴한 것이 원인이다. 그로 인해 유출된 원유는 571만 배럴(한국 태안 유출 사고 유출량 : 7만 8천 배럴)로 일대에 서식하는 4,000마리의 조류와 각종 해양생물들을 몰살시켰다. 




1865년 4월, 미시시피 주 빅스버그의 워렌 카운티 법원 앞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흑인들이었다.


관련글: 주인과 같은 운명을 맞았던 링컨의 애완견


존 불머(John Bulmer)는 1970년대 지금보다 훨씬 폐쇄적이었던 북한을 드나들 수 있었던 외국 기자들 중 하나였다. 1973년 영국 선데이타임스에 실렸던 그의 사진들을 통해 당시의 북한을 볼 수 있다.


김일성 광장에서 관광객들에게 설명하는 가이드. 질서정연한 관광객들과 광장바닥의 커다란 블럭이 눈에 띈다.


북한 주민들이 외국인 기자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다.


김일성은 1994년에 사망했지만 1973년에 이미 그의 동상은 북한 전역에 가득했다. 철저한 개인우상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사진을 촬영한 존 불머(오른쪽)와 필립 오크스가 김일성 생가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만수대 기념비를 순례하는 북한 주민들


평양인민문화궁전 근처를 발맞추어 걷는 아이들


박물관에서 안내원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남학생들


북한 고교생들이 총기조립분해를 학습하고 있다.


인민문화궁전에서 열연하는 배우


평양시내의 여학생들


혁명투쟁과 관련한 벽화로 뒤덮인 시내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의 김일성 초상화


김일성 찬양화를 보고 있는 여성들


거리에 붙어있는 포스터들


평양거리에 멈춰있는 볼가 GAZ-21 차량


외국인전용 호텔. 주변에 사람들이 없다.


평일 아침. 발맞추어 일터로 향하는 주민들


평양시내의 청소부



'툴사의 흑인들을 쓸어버리자


미 흑백 충돌 역사에서 가장 유혈이 낭자한 사건의 하나로 기록돼 있는 툴사 인종폭동. 

1921년 6월 1일 엘리베이터 안에서 공격을 당했다는 17세 백인 소녀의 주장만으로 체포된 19세 흑인 구두닦이의 재판정에 백인 무장 괴한들이 들어와 린치를 가하고 이에 자극받은 흑인들이 총을 들면서 촉발된 사건이다.


이로 인해 툴사 북부의 흑인 거주 지역 그린우드는 초토화되었고, 결국 주방위군의 개입이 이루어지며 진압되었다. 사망자 수는 아직까지 논란에 있으며 최대 3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린우드 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흑인 사회였는데 이 폭동으로 인해 10,000여 명이 노숙자가 되어 거리로 내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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