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아이슬란드 2015 우승 자격으로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 2016에 참가한 아르나 욘스도티르(Arna Ýr Jónsdóttir)는 본선 무대에 오르기 위한 다이어트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기권을 선언하며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아르나 욘스도티르는 자필 편지를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더 이상 '점심 한 끼, 그것도 샐러드만을 먹으며 밤마다 물을 먹고 자는 강행군을 견딜 수 없다' 중도 포기를 하게 된 것이다.



특히 그녀는 10년간 체조선수로 활동하였고, 15세 때 국가대표로 선발된 엘리트 운동선수 출신으로 일반적인 여성들보다는 어깨가 넓고 근육질이어서 대회 주최 측의 권고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수영복 심사 중인 모습, 체격이 다소 큰 건 사실이다>



이런 그녀의 결정에 대해 전세계 네티즌들은 찬사 일색.

하지만 아르나 욘스도티르가 단지 힘겨운 경쟁에서 밀리자 숭고해 보이는 이유를 대며 도망가는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그런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것이 대부분의 미인대회는 하루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짧게는 3주에서 한 달까지 참가자들은 합숙을 하며 마지막 날의 결선 무대에 오르기 위해 수영복, 드레스 심사 등 각종 경연을 하게 된다. 몇 주간 점점 향상되는 모습을 심사위원들이 체크를 하게 되는데 여러 미인대회에 참가 경험이 있을 아르나 욘스도티르가 치열한 시스템을 몰랐을 리가 없다



각 개인에게는 다이어트 뿐만 아니라 맞춤형 조언으로 메이크업을 이렇게 해봐라, 워킹을 바꿔봐라 등 다양한 권고가 주어지게 되는데 애초에 이런 방식의 미인대회가 싫으면 참가를 하지 말 것이지, 참가 포기 자필 편지를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린다는 것은(편지를 주최 측에 보낸 게 아님) 다분히 의도가 보이는 행동이라는 것.



 언론 등에서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 대회를 세계 5대 미인대회로 적고 있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미스 유니버스, 미스월드가 부동의 투톱 세계 미인 대회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그 뒤를 미스 인터내셔널과 미스 어스가 포함되어 세계 4대 미인대회로 불린다.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은 겨우 2013년 태국 방송사 Nawat Itsaragrisil에 의해 발족된 신생 듣보잡 대회

만약 미스월드, 미스 유니버스와 같은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유명대회였다면 다이어트를 이유로 쉽게 포기했을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아르나 욘스도티르는 더 큰 기회를 얻은셈.

어차피 이런 대회에서 우승을 해도 알아 볼 사람이 별로 없는데 그녀는 본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고, 여세를 몰아 나이키 광고모델까지 거머쥐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중국 충칭의 마리나 워터파크에서는 특이한 미인 선발대회를 개최했다.

날씬한 몸매의 상징인 쇄골과 가는 허리가 심사의 주요기준이었는데 움푹 들어간 쇄골에 물을 넣고 금붕어가 머물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가 하면, 팔을 등뒤로 돌려 배꼽을 잡는 것으로 가는 허리를 증명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쇄골에 물을 담고 금붕어 넣기


양쪽에 한마리씩 넣은 참가자


성공에 기뻐하는 참가자


금붕어가 튀어나와 실패


금붕어의 생존은 확인되지 않았다.


쇄골에 동전 쌓기


등 뒤로 팔돌려 배꼽잡기


소포트(Sopot) 위치


1956년, 폴란드 북부 그단스크 주 북부에 위치한 소포트(Sopot)에서 폴란드 최초의 미인대회가 열렸다. 

소포트는 1823년부터 휴양지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아름다운 해변에서 미모를 뽐내는 아가씨들을 보기위해 구름같은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1942년 9월 16일, 미국 최고의 미인을 선발하는 '미스 아메리카(Miss America)'대회가 애틀랜틱시티의 워너극장에서 개최되었다.

미스 텍사스 대표로 출전한 조 캐롤 데니슨(Jo-Carroll Dennison, 1923년생)은 수영복 경연대회와 장기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1942 미스 아메리카로 선정되었다. 

2위는 미스 시카고 베티 브룬크(Bette Brunck), 3위는 미스 미시간 패트리샤 유라인(Patricia Uline)


오늘날 미인대회의 우승자는 지구환경보호나 인권, 동물보호등의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지만 이때는 전쟁중(세계2차대전)이었다. 

전시중의 미스 아메리카는 군부대와 병원등을 방문하고 전쟁 채권의 판매행사에 동원되었다.


미스 아메리카로의 임기가 끝난 조 캐롤 데니슨은 이후 헐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하다가 영화배우인 필 실버스(Phil Silvers)와 결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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