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하지야(Abkhaziya, 압하스 자치공화국)는 조지아(그루지야) 북서부에 위치한 자치공화국으로, 2015년 현재 국제 미승인 국가이다.(러시아,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나우루 승인)


1989년 7월 15일, 압하지야 자치공화국의 수도 수후미에서 압하스 인과 조지아 인 사이에 분규가 일어나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트빌리시 국립대학교 수후미 캠퍼스의 구역을 인종에 따라 분리한 것 분규의 원인이었다. 

소련 당국은 압하지야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병력을 투입하였으나 폭도들은 경찰서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고 보안군을 사살하며 내란으로 이어졌다.


내란의 징조는 같은 해 4월부터 조짐을 보였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는 압하스인들의 자치권 요구 시위에 조지아인들이 자치권 박탈을 요구하며 맞불 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는 조지아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로 이어졌으며 사회주의를 타도하고 소련을 규탄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소련 당국이 병력을 투입해 진압작전을 벌여 19명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이 다쳤던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혁명으로 민족 간 모순을 극복하리라고 주장했던 소련의 호기로움은 불과 67년 만에 지구 상에서 가장 심각한 민족문제들이 일어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아래의 사진은 1980년대 수후미의 모습으로 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시대이다. 

1989년의 인구조사에서 수후미 전체 인구 119,150명 중 12.5%인 14,922명이 압하지야인이었고, 41.5%인 49,460명이 조지아인이었다. 하지만 압하지야의 독립 이후 조지아인이 대거 이탈하면서 현재 62,914명의 인구 중 67.3%인 42,603명이 압하지야인이며, 조지아인은 2.8%인 1,755명에 불과하다.





















1991년 4월, 조지아가 구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1992년 7월 압하지야도 조지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또 다시 분쟁이 발생했다.

이후 크고 작은 분쟁이 이어지다가 현재는 러시아군이 압하지야에 평화 유지군으로 주둔하고 있다. 조지아는 여전히 압하지야의 자치국으로서의 지위는 인정하지만 독립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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