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구멍난 헬멧을 들고 미소 짓는 영국 군인의 미소.

사진과 함께 첨부된 설명은 다음과 같다. "헬멧은 파편으로부터 구해줍니다. 이 군인은 응급치료를 받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그의 생명을 구해준 헬멧을 들고 있습니다."


당시 전쟁에서 헬멧은 포탄 파편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초기에 헬멧을 쓴 군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 국가의 군인들은 천으로 만들어진 전투모를 착용했다. 

1915년 영국군 사상자의 65%가 적 포병으로부터의 머리 부상이었기에 이 한 장의 사진은 헬멧의 중요성에 대한 선전자료로 넘치고도 남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전쟁터에서 종횡무진하는 종군기자들은 목숨을 건 취재활동을 하지만 1910년대의 종군기자들은 훨씬 더 힘들었을 듯 하다. 

요즘이야 카메라의 무게가 많이 가벼워졌지만 당시만 해도 무거운 카메라와 허리까지 오는 삼각대를 항시 휴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 시장


이스탄불 거리


이스탄불 거리와 구두수선공


콘스탄티노플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비잔티움(Byzantium), 아우구스타 안토니나(Augusta Antonina), 신(新) 로마(Nova Roma),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 코스탄티니예(Kostantiniyye), 이스탄불(Istanbul)등이다.

하지만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며 이 도시의 공식명칭은 이스탄불 하나로 정해졌다.


1918년 8월, 이 도시에 큰 화재가 발생해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아래의 사진들은 당시 화재진압 상황과 피해를 담은 모습이다. 이때만 해도 '콘스탄티노플' 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불리워지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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