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에는 남자만 고생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후방의 여성들도 식료품 공장, 군수품 공장은 물론이고 각종 허드렛일에 동원되기 마련이다. 현대전이 국가총력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사진은 2차대전 중 영국 잉글랜드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는 여성 직원의 모습. 


1942년 11월, 전시 채권을 팔기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적국인 일본의 갑표적(甲標的, Ko-hyoteki-class submarine)잠수함이 미국 각 도시를 돌며 전시되었다.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이후 고조된 반일감정 때문인지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1941년 12월, 진주만 공격후 오하우섬에 표류한 갑표적.

해체조사 후 재조립해 전시채권 판매에 이용되었다.




1942년 9월 16일, 미국 최고의 미인을 선발하는 '미스 아메리카(Miss America)'대회가 애틀랜틱시티의 워너극장에서 개최되었다.

미스 텍사스 대표로 출전한 조 캐롤 데니슨(Jo-Carroll Dennison, 1923년생)은 수영복 경연대회와 장기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1942 미스 아메리카로 선정되었다. 

2위는 미스 시카고 베티 브룬크(Bette Brunck), 3위는 미스 미시간 패트리샤 유라인(Patricia Uline)


오늘날 미인대회의 우승자는 지구환경보호나 인권, 동물보호등의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지만 이때는 전쟁중(세계2차대전)이었다. 

전시중의 미스 아메리카는 군부대와 병원등을 방문하고 전쟁 채권의 판매행사에 동원되었다.


미스 아메리카로의 임기가 끝난 조 캐롤 데니슨은 이후 헐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하다가 영화배우인 필 실버스(Phil Silvers)와 결혼하였다.


































쾨니히스베르크는 독일의 옛 도시로, 중세 시대부터 1945년까지 동프로이센의 수도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군과 러시아군 사이의 치열한 접전 지역이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에는 영국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때 역사적 건축 문화재 또한 많이 파괴되었다. 또한 1945년의 쾨니히스베르크 전투에 의해 도시는 거의 폐허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1945년 봄, 1940년 37만 명이던 도시의 인구는 5만 명으로 줄어 있었다. 이들 독일인 주민들은 1948년까지 거의가 추방되었다.

 

독일령일 때에는 쾨니히스베르크(Konigsberg)라 하였으나, 1945년 소련령이 된 것을 계기로 소련의 지도자 M.I.칼리닌(M.I.Kalinin)을 기념하여 현재의 명칭 '칼리닌그라드'로 개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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